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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구조상 어쩔 수 없이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어 제휴라는 끈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마치 고슴도치끼리 만나듯 했다는 것이다. 화해시키기 위해 실무선에서 식사 자리를 만들어주면 음식에는 손도 안 대고 언성만 높이다 결국 서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
하지만 그들은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 공통적인 이해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윈도(Window)와 인텔(intel)을 합친 ‘윈텔’(Wintel)이라는 용어는 이렇게 나왔다. 사실 인텔은 MS의 윈도 체제를 벗어나 보려고 소프트웨어 영역을 몇번이나 넘보다 처절한 패배를 맛봤다. .
MS가 인텔의 시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한 단계 높은 윈도를 때맞춰 출시하거나, MS에 기술적으로 예속된 기업들과 연합전선을 펴서 아예 시장 진입을 봉쇄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기술은 있는데 시장이 없는 설움을 당한 것이었다. .
기술과 시장은 같이 가야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술 주기가 계속 빨라지면서 한 첨단제품이 대량생산될 쯤에는 이미 차세대 기술제품이 이를 대체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만이 시장을 차지한다. 후발주자를 위한 몫은 없다.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속도는 바이러스가 스스로 변종을 계속 만들어내듯 통제가 안 될 정도로 신기술을 만들어낸다. .
가령 기존의 10가지 기술에 2가지 기술을 묶어 신제품을 만든다면 5가지 제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10C2, 즉 45가지가 나온다. 세 가지씩 묶으면 10C3로 120가지가 나온다. 이렇게 많은 융합을 시장이 어떻게 다 수용하겠는가. 대부분의 바이러스가 스스로 소멸되듯이 수많은 종류의 신기술들도 시장에 가기도 전에 대부분 사라진다. .
여기에 CEO의 역할이 있다. CEO는 격랑이 치듯 흔들리는 상황에서 기술의 변화 양상과 시장의 적응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예측을 해야 한다. 이제는 어떤 제품도 5년 시장을 보지 못한다. .
GE는 ‘destroy your business.com’(현 사업을 파괴하라)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한 가지 사업이 시작되면 동시에 그 사업을 접을 준비도 하는 것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장 진입의 타이밍을 놓치면 아예 존립이 어렵다. .
세계의 최첨단 연구소에서는 신기술 개발 중독증에 빠져 있는 과학자들이 오늘도 또 뭔가를 개발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태어난 획기적인 제품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진입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기업의 CEO들은 과거 연구개발-생산-영업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수직 가치사슬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이 시장 변화에 대한 인식을 놓치는 이유는 타성이나 과신 또는 무지에서 나온다. 이제는 기술과 시장을 주시하면서 새로운 가치사슬을 찾아내는 안목과 전략을 갖춰야 한다. 경쟁기업을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니틴 노리아 교수는 성공하는 CEO들에게 필요한 첫째 능력은 ‘시대 흐름을 읽는 능력’(contextual intelligence)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기술만 아는 것이 기술경영은 아니다. 첨단기술을 이해하는 바탕 위에 전략적 판단력과 미래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 기술경영의 핵심이다.